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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상식

<커피 상식> 5.더치커피의 기원 – 바다와 방울에서 태어난 느린 커피

<커피 상식> 5. 더치커피의 기원
– 바다와 방울에서 태어난 느린 커피

 

1. 바람과 바다 위의 작은 발견

17세기, 세계의 바다는 네덜란드 상인들의 손에 달려 있었다. 동인도회사의 깃발을 단 커다란 범선은 향신료와 비단, 차와 도자기를 싣고 아시아와 유럽을 오가며 부를 쌓았다. 그러나 적도를 지나 항해하는 선원들에게 커피는 새로운 생명수와도 같았다. 뜨거운 기후와 습도 속에서 불을 피워 커피를 끓여 마시는 것은 쉽지 않았다. 배 안의 공기는 이미 무겁고 눅눅했으며, 뜨거운 음료는 갈증을 더 키우기 일쑤였다.

어느 날, 젊은 선원은 굵게 간 원두를 작은 자루에 담아 차가운 물에 담갔다. 불을 사용하지 않고, 바람과 시간에 맡겨 커피를 우려낸 것이다. 새벽이 밝아올 무렵, 자루 밑에는 진한 갈색 액체가 고여 있었다. 한 모금 마시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뜨겁지 않았지만, 각성 효과는 분명했고 맛은 오히려 부드러웠다. 이것이 바로 훗날 ‘콜드브루’, 혹은 **‘더치커피’**라 불리게 될 방식의 시작이었다.

 

2. 데지마에서 태어난 드립 타워

네덜란드 상인들은 일본 나가사키 앞바다의 인공섬, **데지마(出島)**를 통해 아시아와 교류했다. 불과 몇 평 남짓한 좁은 섬이었지만, 그곳은 문화와 물자가 오가는 중요한 관문이었다. 이곳에서 일본 장인들은 낯선 커피 추출 방식을 접하고 흥미를 느꼈다.

배에서 쓰던 투박한 병과 자루 대신, 그들은 유리와 나무를 조합한 정교한 기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위쪽 유리구에 물을 담고, 작은 꼭지로 방울의 속도를 조절하며, 아래쪽 유리병에 커피가 모이는 구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드립 타워(cold drip tower)**의 시초였다.

장인들은 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비처럼 잔잔하다”고 표현했고, 물이 커피를 천천히 통과해 내려오는 과정을 일종의 예술로 여겼다. 데지마에서 만들어진 이 기구는 다시 네덜란드로, 또 아시아 여러 지역으로 전해졌다. 느림과 정교함이 만나 탄생한 이 장치는 곧 ‘더치 스타일’ 커피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3. 더치커피라는 이름의 배경

왜 하필 ‘더치(Dutch)’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이는 단순한 지역 명칭이 아니었다. 17세기 당시 동아시아와 교역하며 커피를 널리 퍼뜨린 주체가 네덜란드 상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즐겼던 방식, 그들이 전한 도구가 곧 ‘더치 스타일’이라는 이름으로 굳어졌다.

흥미롭게도 일본에서 발전한 드립 타워가 서양으로 역수출되면서 “네덜란드식 커피”라는 이름으로 불렸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더치커피는 네덜란드와 일본이라는 두 문화가 교차하며 만들어낸 산물이었다.

 

4. 뜨거움 대신 시간을 선택한 커피

더치커피의 본질은 간단하다. 불 대신 시간, 열 대신 기다림. 뜨거운 물로 빠르게 끓여내는 대신, 차가운 물로 하루 종일 우려내며 맛을 얻는다. 그 결과 산미는 줄어들고, 단맛과 바디감은 살아난다. 초콜릿 같은 풍미와 부드러운 질감은 뜨거운 커피와는 또 다른 매력을 준다.

게다가 더치커피는 대량으로 추출해 냉장 보관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17세기 항해자들에게는 장거리 항해 중에도 안정적으로 마실 수 있는 방법이었고, 오늘날에는 여름철 대표 메뉴로 자리 잡았다.

 

5. 항해와 장인의 손끝이 만든 유산

더치커피의 기원에는 바다와 항구, 그리고 사람들의 필요가 있었다. 배 위에서 불을 피우기 어려웠던 현실, 열대의 기후 속에서 시원한 음료를 원했던 욕구, 그리고 그것을 새로운 도구로 발전시킨 장인의 손끝. 이 모든 것이 모여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콜드브루의 뿌리가 되었다.

우리는 지금도 카페에서 우아한 유리 드립 타워를 보며 그 방울방울 떨어지는 물줄기를 지켜본다. 그것은 단순한 추출 과정이 아니라, 수백 년 전 바다를 건너던 상인들과 장인의 숨결이 담긴 장면이다.

 

한 잔 생각

한 방울, 또 한 방울. 더치커피의 탄생은 급하게 끓여내는 뜨거움이 아니라, 기다림과 느림에서 왔다. 커피의 세계에는 언제나 두 길이 공존한다. 빠르고 강렬한 길, 그리고 느리고 부드러운 길.

오늘 당신이 마시는 커피는 어떤 길 위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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