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 오스만 제국의 커피하우스 – 권력과 문화를 뒤흔든 한 잔

이스탄불에 도착한 커피
16세기 중반, 예멘 모카항을 거쳐 온 커피는 마침내 오스만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에 상륙했습니다. 이국적인 향과 깊은 맛을 가진 검은 음료는 곧 상류층과 지식인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며 퍼져나갔습니다. 아랍 상인과 순례자들이 전해온 이 음료는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었습니다. 밤새 기도를 이어갈 수 있게 하는 힘, 대화를 자극하는 각성,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모임 문화를 만들어내는 촉매였습니다.
카베하네(Kahvehane)의 탄생
1550년대, 시리아 알레포 출신 상인들이 이스탄불에 **최초의 커피하우스(카베하네, Kahvehane)**를 열었습니다. 이곳은 작은 잔에 진하게 끓여낸 터키식 커피를 내놓는 단순한 가게였지만, 곧 도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시를 읊고, 음악을 듣고, 종교와 철학을 토론했습니다. 또 어떤 날에는 무역 소식이 오가고, 다른 날에는 정치에 대한 풍자가 이어졌습니다. 이처럼 커피하우스는 음료를 파는 장소에 그치지 않고, 곧 이야기와 문화가 교차하는 새로운 공적 공간이 되었습니다.

논쟁의 공간, 통치자의 불안
커피하우스의 급격한 인기는 곧 논란을 불러왔습니다. 통치자들과 보수적인 성직자들은 이곳을 경계했습니다. 왜냐하면, 커피하우스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정치적 불만을 나누고, 권력을 풍자하며,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술탄 무라드 3세(16세기 후반)는 “커피는 방탕과 게으름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금지령을 내렸고, 일부 시기에는 커피를 마시다 발각되면 매질이나 추방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17세기 술탄 무라드 4세는 커피를 마신 자를 참수하라는 극단적인 명령까지 내렸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은밀히 커피를 즐겼습니다. 지하 공간이나 가정에서 몰래 커피하우스를 운영했고, 새벽에만 문을 여는 비밀 카페도 있었습니다. 결국 금지령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고, 오히려 커피는 저항과 자유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문화의 심장, 커피하우스
커피하우스는 시간이 흐르면서 오스만 제국 도시 문화의 중심으로 성장했습니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졌습니다.
1.지식과 교육의 공간
커피하우스에서는 꾸란 해석이나 신학 토론이 열렸고, 법학자와 학자들이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문맹이 많던 시대에는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 신문이나 책을 낭독해 주며 정보를 퍼뜨렸습니다. 그래서 커피하우스는 종종 **“민중의 학교”**라 불렸습니다.
2. 여론 형성의 무대
정치와 세금, 전쟁 소식은 가장 먼저 커피하우스에서 회자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국가 정책을 비판하거나 새로운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이러한 담론은 곧 민중 여론이 되었고, 이는 통치자들이 두려워한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3. 놀이와 오락의 장
장기(Backgammon)와 체스 같은 게임이 인기를 끌었으며, 사람들은 커피 한 잔과 함께 전략 게임에 몰두했습니다. 사회적 계층을 막론하고 누구나 같은 테이블에서 어울릴 수 있었기에, 커피하우스는 계급의 장벽을 허무는 역할도 했습니다.
4. 예술과 기록의 무대
시인과 음악가들은 커피하우스를 창작 무대로 삼았습니다. 새로운 시와 노래, 연극과 인형극(카라괴즈)이 이곳에서 탄생했습니다. 외국 외교관과 여행자들의 기록에도 “이스탄불의 커피하우스 풍경은 도시 문화 그 자체였다”라는 묘사가 자주 등장했습니다.
결국 커피하우스는 학교이자 신문사, 극장이자 정치 토론장의 기능을 모두 지닌, 오스만 사회의 살아 있는 심장이었습니다.

유럽으로 향한 발걸음
이스탄불의 커피 문화는 곧 유럽으로 전해졌습니다. 17세기 베네치아에 처음 커피가 들어왔고, 뒤이어 파리와 런던에도 커피하우스가 생겨났습니다. 유럽의 커피하우스는 오스만 제국에서 비롯된 문화를 각 도시의 방식대로 변주하여 꽃피웠습니다.
- 런던의 커피하우스는 상업과 언론의 중심지가 되었고, 로이즈(Lloyd’s) 같은 보험회사가 이곳에서 태동했습니다.
- 파리의 카페는 철학자와 혁명가들의 토론장이 되었으며, 계몽주의와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 빈의 카페는 음악가와 예술가들의 아지트가 되어,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작품이 이곳에서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오스만 제국의 커피하우스는 유럽 커피 문화의 원형이자, 세계 시민사회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한 잔 생각
오스만 제국의 커피하우스는 단순히 음료를 판매하는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지식과 문화가 교차하는 공간, 여론이 형성되는 광장, 예술과 놀이가 살아 숨 쉬는 무대였습니다. 한 잔의 커피는 사람들의 정신을 깨우는 동시에 사회를 흔드는 힘을 가졌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카페에서 책을 읽고, 노트북으로 작업하며,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풍경은 단순한 현대적 습관이 아닙니다.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16세기 오스만 제국의 커피하우스가 있습니다. 커피는 단순히 우리의 몸을 깨우는 음료가 아니라, 문화와 역사를 일깨운 한 잔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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