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17세기 영국: 신문을 탄생시킨 런던 커피하우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신문, 주식시장, 보험회사, 심지어 민주주의적 토론 문화까지—이 모든 것에는 17세기 런던의 커피하우스가 깊게 얽혀 있습니다. 커피가 영국에 처음 상륙했을 때는 단순히 이국적인 음료였지만, 곧 그 한 잔은 사회와 문화를 바꾸는 촉매가 되었습니다.

런던에 도착한 커피
영국에 커피가 처음 소개된 것은 1650년대 초였습니다. 옥스퍼드 대학 근처에서 아랍 상인이 운영한 작은 커피숍이 기록된 최초의 영국 커피하우스입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커피는 낯설고 이국적인 음료였지만, 곧 런던으로 전파되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맥주와 에일이 주류이던 시절, 커피는 사람들을 맑게 깨어 있게 해 주는 새로운 선택지였습니다. 술을 마시면 의식이 흐려지고 폭력적이 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커피는 오히려 이성을 자극하고 대화를 길게 이어갈 수 있게 했습니다. 이 점은 지식인과 상인, 정치가들에게 큰 매력이었습니다.

페니 유니버시티, 모두의 학교
런던의 커피하우스는 특별한 가격 체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단돈 1페니만 내면 누구나 들어와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머물 수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커피하우스는 **“페니 유니버시티(Penny University)”**라고 불렸습니다.
1페니의 입장료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단순한 커피가 아니었습니다. 그곳에는 최신 신문과 전단지가 비치되어 있었고, 무역 소식과 정치적 소문이 오갔습니다.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누군가가 큰 소리로 신문을 낭독해 주었고, 이를 통해 정보가 빠르게 퍼져 나갔습니다.
즉, 커피하우스는 당시 영국 사회에서 정보 공유와 학습의 학교 역할을 했습니다.

커피하우스와 언론, 신문의 탄생
런던 커피하우스는 곧 언론의 발상지가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정기적인 신문 발행이 드물었지만, 커피하우스에서는 각종 전단, 팸플릿, 상업 소식지가 놓여 있었고, 사람들이 이를 서로 낭독하거나 필사하여 돌려보았습니다.
특히 정치적 토론과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나갔습니다. 왕정 복고와 의회 정치의 불안정한 시기, 커피하우스는 정치적 여론이 형성되는 장이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이 정보 교환이 체계화되어, 커피하우스 자체가 사실상 신문사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저널리즘 문화는 바로 이곳에서 태어난 셈입니다.

경제와 금융의 허브
런던 커피하우스의 영향력은 언론에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상업과 금융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 로이즈 커피하우스(Lloyd’s Coffee House)
1688년, 런던 항구 근처의 로이즈 커피하우스에서는 선주, 무역업자, 선박 브로커들이 모여 항해 소식을 교환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선박 보험 계약이 이곳에서 이루어졌고, 이것이 훗날 세계적인 보험회사 로이즈 오브 런던으로 발전했습니다. - 주식과 금융 거래
런던 증권거래소의 기원 역시 커피하우스였습니다. 상인과 투자자들은 특정 커피하우스에 모여 최신 무역 정보와 주식 가격을 공유했고, 자연스럽게 거래가 이루어졌습니다. 커피하우스는 곧 상업과 금융의 심장으로 변했습니다.
토론과 시민사회의 탄생
커피하우스는 신분과 계급의 벽을 허무는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귀족, 상인, 학자, 심지어 평민까지도 커피 한 잔 값만 있으면 같은 테이블에서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정치, 철학, 과학, 문학 등 다양한 주제가 오갔고, 이는 곧 영국 사회의 **공론장(public sphere)**으로 발전했습니다. 이 개념은 독일 철학자 하버마스가 훗날 ‘시민사회’의 핵심 요소로 분석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즉, 런던의 커피하우스는 단순한 음료 공간이 아니라, 민주주의적 토론 문화의 실험실이었습니다.

비판과 논란
물론 모든 이들이 커피하우스를 환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부 보수적인 성직자들은 커피가 사람들을 지나치게 흥분시킨다며 **“악마의 음료”**라고 불렀습니다.
1660년대에는 ‘여성들의 청원서(Women’s Petition Against Coffee)’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남편들이 밤늦게까지 커피하우스에 머물며 가정을 돌보지 않는다고 불평했습니다.
찰스 2세는 정치적 모의와 음모가 커피하우스에서 퍼진다고 우려하며 커피하우스 폐쇄령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의 거센 반발로 불과 며칠 만에 철회되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은 오히려 커피하우스가 얼마나 영국 사회에 깊숙이 자리 잡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였습니다.
유럽으로 퍼져나간 영향
런던 커피하우스의 문화는 곧 유럽 대륙에도 전파되었습니다. 파리에서는 계몽사상가들의 토론장이 되었고, 빈에서는 예술가와 음악가들의 아지트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런던의 독특한 점은, 신문과 금융, 시민사회라는 제도적 틀을 만들어냈다는 데 있습니다.
커피 한 잔이 신문을 낳고, 금융을 키우며, 민주주의의 싹을 틔운 것이지요.
한 잔 생각
17세기 런던의 커피하우스는 단순히 음료를 파는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언론의 발상지, 금융의 심장, 토론의 장이자, 시민사회의 요람이었습니다.
오늘날 카페에서 우리가 신문을 읽고, 주식 앱을 켜고, 친구와 사회 문제를 토론하는 풍경은 사실 300년 전 런던 커피하우스에서 이미 시작된 장면입니다.
커피는 단순히 각성을 주는 음료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대화의 불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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